프로덕트 오너로서,

나도 2형식이고 싶다.

Sebspark 2019. 8. 12. 11:13

※ 책을 리뷰하는 글이 아닙니다. 독서를 통해 저를 리뷰하는 글입니다.

기획은 2형식이다

얼마 전 사내 기획 스터디의 한 섹션으로 <기획은 2형식이다> 라는 책을 추천받아 읽고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눈에 띄는 안경과 같은 도형에 노오란 색 책 커버는 마치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꺼내드는 옐로우 카드와 같이 기획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습니다. 책 안을 들여다보면 기획자들을 위한 깊이는 있지만 이해하기 쉬운 통찰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기획자라는 타이틀을 업으로 삼으면서 당연시 여기고 놓쳤던 수많은 '기획의 풍경들' 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풍경들을 무심코 지나치며 기획이라는 직무의 끈을 잡고 일했던 저는 마치 하수 기획자가 된 것 마냥 고개를 푹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모르고 있던 내용들이 아닙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일을 하면서는 당장 해야할 일에 고립됨으로서 놓치고 있는 것들을 아주 쉽게 풀어내어 전반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책이었습니다. 

 

플래닝 코드 Planning Code

이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명 플래닝 코드라고 불리우는 P 와 S 코드 입니다. 아마 대부분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매우 간단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집약되어 있는 아주 간결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P코드는 Problem, S코드는 Solution 입니다. 이 두 코드는 서로 연결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기획에 있어 절대 떨어트려 놓을 수 없는 사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문제를 제대로 찾고 정의하기만 해도 근사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획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플래닝 코드의 관계를 통해 기획의 고수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획의 고수로 레벨 업 하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저는 어떤 것들을 Remind 할 수 있었는지 적어내려가 보았습니다.

 

단순한 기획자 보다는 간결한 기획자

저는 간결한 기획자가 되고 싶습니다. '간결하다'는 것은 간단하지만 명백하고 짜임새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획 일을 하면서 우리는 매 순간 글이나 말로서 나의 생각을 전달합니다. 이것을 잘 하는 것은 기획자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제가 스스로 느끼기도 하고 주변 동료들을 통해 피드백을 받을 때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저의 글과 말이 너무 어렵고 이해하기에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기획자로서 굉장히 부끄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획자의 명확하고도 명쾌한 의사전달 능력에 따라 전반적인 프로젝트 진행 효율에 상당한 차이를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한 기획자가 아니라 간결한 기획자가 되고 싶습니다. 

 

책 제목 그대로 저자는 내내 2형식을 외칩니다. 생각을 2형식으로 간결하게 해낼 수 있다면 글과 말도 간결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평소 제 머릿속으로 입력(input) 된 정보들을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에 글과 말로 이해하기 어렵게 출력(output) 이 됩니다. 입력 된 수많은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형식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보들을 구조화하고 단순화하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중수의 기획은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보의 통찰보다는 정보 자체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정보의 포로가 되어버립니다. - 85p

 

책에서 매우 공감하는 구절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정보는 너무 많은데 정작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파악해 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플로우 차트(flow chart) 를 이용하여 프로세스화 하는 것을 주로 즐기곤 합니다. 하나하나 순서대로 흐름을 배열하다보면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시작한 이 활동은 오히려 생각이 복잡해지도록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초 도식화를 하려던 내용을 중심으로 파생되는 수많은 예외 케이스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다른 정보로 시선이 분산되다 보니 본래 알고 싶고 집중하던 중요한 정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플로우 차트를 이용하여 도식화 하는 방법은 저에게 있어서 필요한 도구 중 하나임은 분명하지만, 본래 도출하고자 했던 결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기획은 프로세스화 하여 진행해야 완벽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면 버릇처럼 꺼내든 나름의 무기가 플로우 차트 그리기 였는데, 저의 생각을 복잡하게 하는데 한 몫 했다는 사실로 인해 다시 도구 이용의 적절성을 고려해보게 되었습니다. 간결한 기획자로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나의 방법을 조금 덜어내고 중요한 핵심 정보를 단순하게 하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하는 기획자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사람이다."

 

예전에 어느 해외 아티클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를 위와 같이 정의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문장 역시 2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네요. 제품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들을 중요도에 따라 정의하며 맥가이버 처럼 무엇이든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있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같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은 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동안 '문제' 라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정의하며 기획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생각에 문제같이 보이는 모든 것을 문제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의한 문제들을 어떻게든 해결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해결되어도 또 다시 문제가 반복되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what 과 how 같은 S코드보다 why 같은 P코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기획자 였다는 사실에는 조금 안도했습니다.) 

책에서는 P-S 플래닝코드 중에서도 P코드, 문제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는 것에 대부분의 기획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P코드의 정의 역시 2형식으로 간단하게 사고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본질적인 P코드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획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현상적인 면이 아니라 원인적인 점, 바로 문제점 이라고 말합니다. 

 

과거 아이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던 운동사 시절로 잠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주의력 결핍을 겪고 있는 아이, 발달이 늦은 아이 등 보이는 증상과 증후는 너무 다양했습니다. 그 범위를 스펙트럼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대부분이 이러한 스펙트럼 증상들을 억제 시키거나 활성화 시키기 위해 주로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해결책은 '약물' 이었습니다. 물론 양의사의 관점에서는 '약물 치료'도 근본적 치료가 될 수 있겠으나, 당시 우리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약물은 복용 당시에만 증상을 약화 또는 호전 시켰다가 복용을 중단하면 다시 재발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억제와 활성의 조절을 담당하는 두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영유아 시기부터 발달하면서 누락된 두뇌의 발달 과정들을 다시 꼼꼼히 채워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들을 적용했습니다. 그 결과 제 경험에 한해서는 약물을 복용 하면서도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이 본인의 힘으로 증상을 조절하고 억제할 수 있는 모습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점 찾기를 통해 그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저는 본질적인 P-S 코드를 갖춘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운이 좋은 기획자였네요.

 

잊을만 하면 기억나는 운동사 시절, 당시 회사 프로그램의 플래닝코드 도식


기획자로서 깊이 있는 기획을 한다는 것은 결국 진짜 문제를 어떻게, 얼마나, 핵심적으로 정의 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관점에서 기획자로서 깊이가 있느냐를 스스로 반문해보았을 때 저는 반반인 기획자라고 생각합니다. 문제 찾기에 대한 의지와 태도는 지니고 있으나 아직 주어진 일을 하면서 진짜 문제 찾기를 완벽히 수행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지와 태도를 갖추었으니 진짜 문제 찾기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여유를 찾는다면 깊이 있는 기획자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간결한 P코드 찾기가 습관화 된 기획자

이 책의 저자는 간결하게 정리된 P코드를 매우 강조합니다. 책 내용의 2/3 가 P코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실제 기획을 할 때 P코드를 찾아내는 일이 75% 를 차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책의 후반부인 S코드를 논할 때에도 중간중간 P코드를 잊지 말라고 상기시켜 줍니다. 저도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집중하고 흥미롭게 생각을 많이 했던 부분은 P코드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부터 해결 방법 보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만, 그 문제를 정의하는 나름의 기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P코드 정의로부터 야기되는 나비효과와 같은 영향력은 기획자로서 책임감을 더욱 고취시키기에 충분했고 정말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간결하게 정리된 P코드를 발굴하는 일은 깊이 있는 기획자로서 성장하고 일하기 위해 평생 명심하고 연습해야 할 부분 이라고 생각합니다. P코드는 기획자의 인생코드 입니다. 만약 제가 P코드를 잘 찾아낼 수 있고 이를 통해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획자가 된다면, 언젠가 <기획은 2형식이다> 에 <기획은 쌥이다> 라고 자신있게 대입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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